예외 요청은 왜 회사 이익을 새게 만드는가?
표준 가격표에는 없는 일이 있다.
견적서에는 납기, 수량, 범위, 단가가 적혀 있다. 계약서에는 제공해야 할 일과 책임 범위가 적혀 있다. 내부 기준표에는 담당자와 처리 순서가 적혀 있다.
그런데 실제 일은 그 표 안에서만 움직이지 않는다.
고객은 급하다고 한다. 내부 보고에 필요하니 양식을 조금 바꿔 달라고 한다. 원래 범위에는 없지만 자료 하나만 더 붙여 달라고 한다. 이번 건만 납기를 당겨줄 수 없냐고 묻는다.
요청은 작아 보인다.
그래서 회사는 들어준다.
그 순간 고객에게는 편의가 생긴다. 더 빨리 받고, 더 쉽게 보고하고, 자기 회사 안에서 설명하기 좋아진다. 고객 입장에서는 분명 이득이다.
하지만 회사 안에서는 다른 일이 시작된다.
누군가는 원래 순서를 바꾼다. 누군가는 하던 일을 멈추고 새 양식에 맞춘다. 누군가는 왜 이번에는 다르게 처리했는지 다시 설명한다. 다음에 같은 고객이 비슷한 요청을 하면, 그때는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기억해야 한다.
이 비용은 이상한 곳에 숨어 있다.
매출표에는 보이지 않는다. 고객 만족도에는 좋게 남을 수 있다. 담당자의 업무표에는 정확히 잡히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은 쓰였고, 순서는 밀렸고, 기준은 조금 흔들렸다.
예외 요청의 문제는 친절 그 자체가 아니다.
고객이 얻은 이득이 회사 안에서 어떤 조건으로 남는지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고객에게 생긴 이득과 회사에 남은 몫
가치전략에서는 가치를 만든다는 말과 그 가치를 가져간다는 말을 구분한다.
고객이 더 편해졌다면 가치는 생겼다. 고객이 시간을 아꼈고, 내부 설명이 쉬워졌고, 위험이 줄었다면 고객에게는 분명 이득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그 이득이 회사의 이익으로 자동 전환되지는 않는다.
회사가 실제로 가져가는 몫은 따로 정해져야 한다. 가격에 반영될 수도 있다. 다음 거래의 조건으로 남을 수도 있다. 반복 업무의 표준으로 바뀔 수도 있다. 고객과의 관계 안정성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아무 데도 남지 않으면 다른 일이 된다.
고객에게는 이득이 생겼지만, 회사에는 피로만 남는다.
여기서 ‘전유’라는 말이 필요하다. 어렵게 들리지만 뜻은 단순하다. 만든 가치 중에서 회사가 실제로 가져가는 몫이다. 고객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했다고 해서 회사가 그 몫을 가져가는 것은 아니다. 회사가 가져갈 수 있도록 조건이 남아야 한다.
예외 요청은 이 차이를 가장 잘 보여준다.
고객은 혜택을 받는다. 회사는 일을 더 한다. 그런데 가격도 그대로이고, 납기 기준도 그대로이고, 책임 범위도 그대로라면 회사는 무엇을 가져간 것일까.
예외가 반복되면 표준이 된다
예외는 처음부터 크게 들어오지 않는다.
대부분은 작은 부탁처럼 들어온다. 한 번만 해달라고 한다. 이번 건만 급하다고 한다. 원래는 안 되는 줄 알지만 고객사 내부 사정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작은 예외도 반복되면 회사의 표준을 바꾼다.
가격표가 아니라 기억 속에서 표준이 바뀐다. 계약서가 아니라 담당자의 습관 속에서 표준이 바뀐다. 업무 기준서가 아니라 “저 고객은 원래 그렇게 해줘야 한다”는 말 속에서 표준이 바뀐다.
이런 표준은 위험하다.
누가 승인했는지 흐릿하다. 추가 비용이 얼마인지 보이지 않는다. 다음에도 해야 하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영업은 관계를 위해 필요했다고 말하고, 운영은 현장이 떠안았다고 느낀다. 고객은 다음에도 같은 수준의 대응을 기대한다.
이때 예외는 더 이상 예외가 아니다.
가격 없는 옵션이다.
기록 없는 서비스다.
책임이 정리되지 않은 일정 변경이다.
거래비용 관점에서 보면 이런 예외는 단순한 친절이 아니다. 협의하고, 조정하고, 확인하고, 다시 설명하고, 때로는 재작업하는 비용을 만든다. 관리통제 관점에서 보면 기준 밖의 행동이 반복되는 일이다. 기준 밖의 행동이 반복되는데 측정과 책임이 그대로라면, 회사는 어디서 이익이 새는지 보기 어렵다.
예외는 막을 일이 아니라 남길 일이다
예외를 모두 거절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회사에는 예외 대응이 경쟁력이다. 빠른 납기, 고객별 맞춤, 특수 사양, 유연한 자료 제공이 고객이 그 회사를 선택하는 이유일 수 있다. 그런 회사에서 예외는 비용만이 아니라 차별화의 원천이다.
다만 차별화가 되려면 예외가 회사 안에 남아야 한다.
가격에 남아야 한다. 일정 조건에 남아야 한다. 승인 기준에 남아야 한다. 반복될 예외와 한 번만 받을 예외가 구분되어야 한다. 자주 반복되는 요청이라면 새로운 상품이나 옵션의 후보가 되어야 한다.
예외가 남지 않으면 회사는 배울 수 없다.
그저 매번 친절한 회사가 된다.
매번 친절한 회사가 항상 이익이 좋은 회사는 아니다. 친절이 이익으로 남으려면, 친절 뒤에 생긴 추가 일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누가 시간을 썼는지, 어떤 순서가 바뀌었는지, 어떤 책임이 이동했는지, 다음 거래에서는 무엇을 다르게 정해야 하는지 남겨야 한다.
그래서 예외 요청 앞에서 필요한 질문은 조금 다르다.
이 요청을 들어줄 것인가.
그 질문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요청은 회사 안에 무엇으로 남을 것인가.
가격으로 남을 것인가. 표준으로 남을 것인가. 학습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아무 기록 없이 담당자의 시간으로 사라질 것인가.
좋은 고객 대응은 많이 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들어준 것을 회사의 조건으로 남기는 것이다.
참고문헌과 주석
- Cliff Bowman and Véronique Ambrosini, “Value Creation Versus Value Capture: Towards a Coherent Definition of Value in Strategy,” British Journal of Management 11, no. 1 (2000): 1-15. 이 글에서는 고객에게 생긴 이득과 회사가 실제로 가져가는 몫을 구분하는 배경으로 사용했다.
- Adam M. Brandenburger and Harborne W. Stuart Jr., “Value-Based Business Strategy,” Journal of Economics & Management Strategy 5, no. 1 (1996): 5-24. 이 글에서는 가치가 가격, 비용, 지불의사 사이에서 어떻게 나뉘는지 보는 관점의 배경으로 사용했다.
- Oliver E. Williamson, “Strategy Research: Governance and Competence Perspectives,” Strategic Management Journal 20, no. 12 (1999): 1087-1108. 이 글에서는 예외 요청을 단순 친절이 아니라 조정과 거버넌스 비용의 문제로 보는 배경으로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