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변화는 왜 서로를 방해하는가
ERP 고도화 계획서에는 IT 일정이 적혀 있다. 품질 개선안에는 생산 일정이, 고객관리 개편안에는 영업 일정이 적혀 있다. 세 문서를 한 장씩 보면 무리한 과제는 없다.
참여자 명단을 겹쳐 놓으면 다른 그림이 나온다. 생산팀장과 몇몇 실무자의 이름이 세 문서에 모두 들어 있다. 한 사람은 같은 달에 새 화면을 배우고, 작업 기준을 고치고, 고객 정보의 입력 범위를 영업팀과 맞춰야 한다.
각 부서는 필요한 변화를 골랐다. 조직 전체에서는 아무도 세 변화를 함께 고르지 않았다.
변화가 늦어지면 흔히 구성원의 저항을 먼저 의심한다. 필요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거나 새 방식을 배우려는 의지가 약하다고 본다. 설명회를 늘리고 교육을 다시 잡는다.
그러나 사람이 변화에 준비됐는지를 묻기 전에, 어떤 변화들이 그 사람에게 동시에 도착했는지를 물어야 할 때가 있다.
2026년 테리캉가스와 동료들은 25년간의 변화관리 연구를 검토한 뒤 변화 준비도, 저항, 참여를 고정된 태도가 아니라 관계와 맥락 속에서 달라지는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고 정리했다.[1] 특히 기존 연구가 개인과 단일한 계획 변화에 많이 집중했으며, 여러 변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 과제에 찬성한다고 해서 같은 시기에 도착한 모든 과제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저항처럼 보이는 반응도 특정 변화의 문제라기보다 변화들의 조합에서 생길 수 있다.
각 과제는 맞고, 합계는 틀릴 수 있다
회사는 보통 변화 과제를 하나씩 심사한다. ERP는 입력 시간을 얼마나 줄이는지, 품질 개선은 불량을 얼마나 낮추는지, 고객관리 개편은 영업 정보를 얼마나 잘 남기는지 따진다.
이 방식은 각 과제의 필요성을 판단하는 데는 유용하다. 다만 서로 다른 과제가 같은 사람, 같은 데이터, 같은 회의, 같은 결정권자를 함께 요구할 때 생기는 비용은 잘 보이지 않는다.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맡는 사람들을 조사한 지카-빅토르손과 동료들의 연구에서는 회복할 시간 부족, 불충분한 업무 절차, 시간 부족, 동시에 맡은 프로젝트 수가 프로젝트 과부하와 관련됐다.[2] 연구 참여자들은 일을 잘게 나눠 처리하고, 프로젝트 사이를 자주 오가며, 우선순위 충돌과 조정에 시간을 썼다.
그래서 세 과제가 각각 근무시간의 20%를 요구한다고 해서 실제 부담이 단순히 60%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다른 기준을 떠올리는 시간, 담당자를 기다리는 시간, 바뀐 내용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 붙는다.
변화는 더해지기만 하지 않는다. 서로의 진행을 끊으며 부담을 키운다.
문제는 과제 수보다 부하가 몰리는 순간이다
연중 열 개의 개선 과제가 있어도 차례로 진행되고 필요한 사람이 다르면 감당할 수 있다. 반대로 세 개뿐이어도 교육, 시험 운영, 오류 수정이 같은 2주에 몰리면 현장은 멈출 수 있다.
여기서 봐야 할 것은 과제의 평균 개수가 아니라 부하의 정점이다. 변화가 사람의 주의를 가장 많이 요구하는 시기가 언제이며, 그때 다른 과제도 같은 사람을 부르는지를 보는 것이다.
2026년 델릴은 다중 프로젝트 조직의 과부하가 개인의 시간관리 실패가 아니라 상시 조직, 임시 프로젝트 조직, 개인 수준이 서로 맞물리며 생긴다고 설명했다.[3] 인력의 여유 부족과 겹치는 마감, 일정의 변동성은 과부하를 지속시키는 구조적 조건이었다.
현장에서는 이런 충돌이 늦게 발견된다. 각 프로젝트의 진척률은 정상인데 회의가 자꾸 미뤄진다. 핵심 사용자의 답변이 늦고, 의사결정자는 같은 사안을 여러 회의에서 다시 듣는다. 어느 프로젝트도 단독으로는 큰 문제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원인은 사람의 바쁨으로만 남는다.
실제로는 프로젝트들이 같은 좁은 통로를 함께 지나가고 있는 셈이다.
우선순위가 여러 개면 순서는 현장에서 정해진다
과제마다 후원자가 다르면 자신의 과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어느 과제도 공식적으로 미뤄지지 않는다. 그러면 순서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 내려간다.
실무자는 가장 자주 독촉받는 일을 먼저 한다. 팀장은 당장 장애가 난 과제를 고른다. 말하지 않은 우선순위가 매일 새로 만들어진다. 그 결과 경영진이 승인한 전략의 순서와 현장이 실제로 수행한 순서가 달라진다.
프로젝트 포트폴리오 관리는 여러 과제를 한꺼번에 보고 전략과 자원을 맞추기 위해 발전해 왔다. 알레만과 동료들의 연구는 이 역량이 제도 하나를 도입한다고 바로 생기지 않으며, 경영진의 정당화와 반복적인 해석, 새로운 루틴의 내재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4]
중소기업에 거대한 포트폴리오 조직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다만 모든 과제를 중요하다고 승인한 뒤 현장에 순서를 떠넘기는 방식은 바꿀 필요가 있다.
변화 충돌 지도를 그린다
새 변화의 사업계획서를 하나 더 만들기 전에 현재 진행 중인 과제를 한 장에 겹쳐 볼 수 있다.
| 확인 항목 | 묻는 질문 |
|---|---|
| 집중 시기 | 이 과제가 사람의 주의를 가장 많이 요구하는 때는 언제인가 |
| 공유 인력 | 다른 변화도 동시에 필요로 하는 핵심 인력은 누구인가 |
| 연결 지점 | 시스템, 데이터, 역할, 회의 가운데 무엇이 다른 과제와 맞물리는가 |
| 시작 조건 | 어떤 선행 변화가 어느 수준까지 안정돼야 시작할 수 있는가 |
| 순서 결정 | 지금 시작하지 않을 과제는 무엇이며 언제 다시 판단할 것인가 |
이 표의 목적은 프로젝트를 많이 하는 회사를 적게 하는 회사로 바꾸는 데 있지 않다. 변화가 가장 붐비는 순간을 먼저 보고, 조직이 실제로 지킬 순서를 정하는 데 있다.
이를 동시진행 변화 한도라고 부를 수 있다. 숫자를 업종별 표준처럼 정하자는 뜻은 아니다. 같은 핵심 역할에 큰 전환 과제가 두 개 이상 겹치면 자동으로 한 단계 위에서 순서를 다시 심사하는 식의 내부 규칙이다.
안전, 규제, 긴급한 고객 문제는 다른 과제보다 먼저 시작할 수 있다. 작고 되돌리기 쉬우며 공유 인력을 거의 쓰지 않는 실험도 빠르게 진행할 수 있다. 반대로 여러 부서의 데이터와 역할을 함께 바꾸는 과제라면 개별 수익성만큼 다른 변화와의 충돌을 봐야 한다.
중앙에서 모든 작은 개선을 허가하게 만들면 포트폴리오 관리는 또 다른 병목이 된다. 관리할 대상은 변화의 수가 아니라 공유 자원이 몰리는 변화와 되돌리기 어려운 변화다.
변화를 많이 승인하는 조직은 바쁘게 보인다. 변화를 골라 순서를 정하는 조직은 실제로 달라진다.
각자 좋은 변화도 한꺼번에 시작하면 서로의 성공을 막는다.
참고문헌과 주석
[1] Teerikangas, S., Gjerald, O., & Meglio, O. (2026). Resistant, ready or engaged - with what change? A review and transformative research agenda. Journal of Change Management, 26(1), 40-59. https://doi.org/10.1080/14697017.2026.2621657
[2] Zika-Viktorsson, A., Sundstrom, P., & Engwall, M. (2006). Project overload: An exploratory study of work and management in multi-project settings. International Journal of Project Management, 24(5), 385-394. https://doi.org/10.1016/j.ijproman.2006.02.010
[3] Delisle, J. (2026). Understanding the causes of work overload in multi-project organizations: A multilevel perspective. International Journal of Project Management, 44(5), 102888. https://doi.org/10.1016/j.ijproman.2026.102888
[4] Ahlemann, F., Bergan, P., Karger, E., Greulich, M., & Reining, S. (2024). Making sense of projects - Developing project portfolio management capabilities. Schmalenbach Journal of Business Research, 76, 293-325. https://doi.org/10.1007/s41471-023-0017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