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는 자원은 왜 모두 같은 여유가 아닌가?
설비·사람·예산이 따로 남아서는 새 일을 시작할 수 없는 이유
생산계획표에는 다음 주문까지 빈칸이 있었다.
새 배합을 시험하자는 말이 나왔지만 날짜를 잡는 순간 빈칸들이 서로 맞지 않았다. 라인이 비는 날에는 기술자가 없었고, 기술자가 가능한 날에는 시험 원료가 도착하지 않았다. 원료가 준비될 무렵에는 측정 장비의 예약이 차 있었다.
예산도 남아 있었다. 다만 그 예산을 시험 재료에 쓰려면 항목을 바꾸는 승인이 필요했다.
각 표에는 여유가 있었다. 생산계획에는 빈 시간이 있었고, 부서에는 쓸 수 있는 예산이 있었으며, 기술자에게도 가능한 날이 있었다.
그러나 한 날짜에 모이는 여유는 없었다.
회사는 이런 상황을 흔히 협조 부족이나 준비 부족으로 설명한다. 조금만 일정을 맞추면 될 것 같고, 담당자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면 시작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는 그보다 먼저 봐야 할 문제가 있다. 일은 자원 하나로 시작되지 않는다. 설비와 사람, 재료와 측정, 예산과 승인이 같은 시간에 한 묶음으로 움직여야 시작된다.
남아 있는 자원의 합계와 실제로 쓸 수 있는 여유는 다르다.
부서별 관리 자료는 자원을 따로 보여 준다
회사는 자원을 대개 따로 관리한다.
생산부서는 설비 가동률을 본다. 인사나 팀장은 사람의 일정을 보고, 재무는 남은 예산을 확인한다. 구매는 재료의 입고일을 관리하고, 품질부서는 측정 장비와 시험 순서를 잡는다.
각 관리 방식은 자기 목적에는 맞다. 문제는 새 일을 시작할 때 생긴다. 한 부서의 자료만으로는 다른 자원이 언제 필요한지 알 수 없다.
설비가 사흘 비어 있다는 숫자는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 사흘에 기술자와 원료, 측정 장비가 함께 준비되는지는 말해 주지 않는다. 남은 예산도 마찬가지다. 금액은 충분해도 다른 용도로 옮길 수 없거나 승인에 일주일이 걸리면 이번 시험에는 사용할 수 없다.
조직 여유자원은 현재 운영에 꼭 필요한 수준을 넘어선 자원을 뜻한다. 리처드 사이어트와 제임스 마치는 이런 여유가 충격을 흡수하고 조직의 선택 범위를 넓힌다고 보았다.[1]
다만 자원이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어떤 선택이 가능한지는 알 수 없다.
사용할 수 있는가, 옮겨 쓸 수 있는가
2024년 조직 여유자원 연구 229편을 통합한 매슈 마운트와 동료들은 여유를 볼 때 두 가지 성격을 구분한다.[2]
하나는 가용성이다. 그 자원을 실제로 지금 사용할 수 있는지를 뜻한다. 다른 하나는 전용 가능성이다. 원래 쓰던 곳에서 다른 용도로 옮겨 쓸 수 있는지를 뜻한다.
생산라인의 빈 시간은 가용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라인을 다른 공정으로 옮길 수는 없다. 교육비가 남아 있어도 시험 재료를 사는 데 쓸 수 없다면 전용 가능성이 낮다. 사람이 시간이 있어도 특정 공정의 자격이나 경험이 없다면 필요한 역할로 바로 옮기기 어렵다.
그래서 얼마나 남았는가라는 질문만으로는 부족하다.
언제 사용할 수 있는가, 다른 용도로 옮길 수 있는가, 무엇과 함께 있어야 쓸모가 생기는가를 같이 물어야 한다.
자원은 보유할 때보다 묶일 때 일을 한다
자원기반관점은 기업이 가진 자원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자원 오케스트레이션 연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데이비드 서먼과 동료들은 기업이 자원을 보유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관리자가 자원을 구조화하고 서로 묶고 실제 행동에 활용하는 과정을 함께 봐야 한다고 설명한다.[3]
이 관점에서 보면 도입의 회사는 자원이 없는 것이 아니다. 자원이 아직 작업 가능한 묶음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다.
새 배합 시험에는 생산라인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공정을 아는 기술자, 시험할 원료, 결과를 확인할 측정 장비, 재료를 살 예산, 시험을 허용할 결정이 함께 필요하다.
다섯 자원 가운데 네 가지가 충분해도 하나가 빠지면 시험은 시작되지 않는다. 반대로 다섯 자원이 작은 범위에서라도 동시에 모이면 전체 시험은 못 하더라도 첫 번째 확인은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이렇게 같은 시간에 함께 동원할 수 있는 완전한 자원 묶음을 실행 가능한 여유라고 부르려 한다.
실행 가능한 여유는 남아 있는 자원의 합계가 아니다. 필요한 자원들이 맞물린 뒤 실제로 해낼 수 있는 일의 크기다.
가장 많이 남은 자원보다 가장 좁은 자원을 본다
자원 묶음에서는 가장 많이 남은 자원이 시작 가능성을 정하지 않는다.
라인이 사흘 비어 있어도 기술자가 반나절만 가능하다면 지금 실행할 수 있는 시험은 반나절짜리에 가깝다. 예산이 충분해도 측정 장비를 한 번만 쓸 수 있다면 확인할 조건의 수를 줄여야 한다.
이것은 부족한 자원을 무조건 더 확보하라는 뜻이 아니다. 필요한 자원의 묶음에 맞춰 과제의 크기를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전체 생산조건을 한 번에 시험하기 어렵다면 먼저 실험실 장비로 두 가지 조건만 비교할 수 있다. 기술자가 오래 자리를 비우기 어렵다면 공정 설정과 첫 측정까지만 함께하고, 반복 작업은 다른 사람이 수행할 수 있게 나눌 수 있다. 예산 항목을 바로 바꿀 수 없다면 이미 확보한 재료로 확인 가능한 질문부터 고를 수 있다.
여유를 늘리는 대신 시작 가능한 묶음을 작게 만드는 선택이다.
자원의 가용 시점을 한 장에 겹쳐 본다
기존의 부서별 관리 자료를 하나로 합칠 필요는 없다. 새 과제 하나를 놓고 필요한 자원의 가용 시점을 한 장에 겹쳐 보면 된다. 이 글에서는 이를 자원 정렬표라고 부른다.
| 자원 | 언제 사용할 수 있는가 | 다른 용도로 옮길 수 있는가 | 함께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 누가 이동을 결정하는가 |
|---|---|---|---|---|
| 설비 | 다음 주문 전 | 다른 장소로 이동 불가 | 기술자·원료 | 생산책임자 |
| 기술자 | 고객 일정 사이 | 역할 일부 이전 가능 | 작업 기준·보조 인력 | 팀장 |
| 시험 원료 | 입고 후 | 해당 시험에만 사용 | 구매 승인 | 구매·개발책임자 |
| 측정 장비 | 예약이 빈 시간 | 다른 장비 대체 가능 여부 확인 | 측정 담당자 | 품질책임자 |
| 예산 | 집행 기한 전 | 항목 변경 승인 필요 | 견적·승인 | 예산책임자 |
이 표에서 찾을 것은 가장 많이 남은 자원이 아니다.
첫째, 모든 필수 자원이 겹치는 가장 가까운 시간창을 찾는다. 둘째, 그 시간창을 가장 좁게 만드는 자원이 무엇인지 확인한다. 셋째, 그 자원을 늘릴지 기다릴지 결정하기 전에 과제를 더 작은 검증으로 바꿀 수 있는지 본다.
목표가 새 배합을 생산라인에서 완전히 검증한다라면 묶음이 너무 클 수 있다. 목표를 두 배합 가운데 다음 생산시험에 올릴 하나를 고른다로 줄이면 필요한 설비와 시간도 달라진다.
자원 정렬표는 더 많은 일을 밀어 넣기 위한 표가 아니다. 지금 가진 자원으로 실제로 끝낼 수 있는 일의 크기를 정하는 표다.
여유의 총량보다 구성이 중요하다
니틴 노리아와 란제이 굴라티는 두 다국적기업의 264개 부서를 분석해 여유와 혁신 사이에 역 U자 관계가 있음을 보였다.[4] 여유가 너무 적으면 실패를 감당하기 어렵고, 지나치게 많으면 선택의 규율이 약해질 수 있다.
이 연구는 여유를 많이 확보하는 것이 곧 혁신이라는 단순한 처방이 아님을 보여 준다. 여기에 자원의 조합을 더해 보면 한 가지가 더 보인다.
같은 총량의 여유라도 무엇이 언제 남아 있는지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이 다르다. 설비에 몰린 여유, 현금으로 남은 여유, 숙련자의 시간으로 남은 여유는 서로 바꿔 쓸 수 없다. 총량이 같아도 완성할 수 있는 자원 묶음의 수는 다르다.
앞선 연구노트들은 바쁜 회사에 학습을 남길 시간, 좋은 성과를 학습 예산으로 바꾸는 방법, 탐색과 활용의 순서를 다뤘다. 이 글의 질문은 그보다 앞에 있다.
지금 여유가 있는가를 묻기 전에, 지금 가진 자원으로 무엇을 실제로 시작할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한 날짜에 모이는 여유
도입의 생산계획표에는 여러 빈칸이 있었다. 각각은 거짓이 아니었다. 다만 서로 다른 날과 다른 장부에 흩어져 있었다.
이 회사가 해야 할 일은 모든 자원을 더 확보하는 것이 아니다. 먼저 한 번의 시험에 꼭 필요한 자원을 고르고, 그 자원들이 겹치는 가장 가까운 시간창을 찾는 것이다. 묶음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가장 좁은 자원에 맞춰 시험의 크기를 줄이거나 시점을 옮긴다.
이렇게 보면 자원이 있는데 왜 못 하느냐는 질문도 달라진다.
자원이 남아 있는가가 아니라, 필요한 자원이 한 날짜에 모일 수 있는가.
회사의 여유는 남은 자원의 합계가 아니다. 같은 시간에 함께 움직일 수 있는 자원의 묶음이다.
참고문헌과 주석
[1] Cyert, R. M., & March, J. G. (1963). A Behavioral Theory of the Firm. Prentice-Hall.
[2] Mount, M. P., Ertug, G., Kavusan, K., George, G., & Zou, T. (2024). Reeling in the slack: An integrative review to reinstate slack as a central theoretical construct for management research. Academy of Management Annals, 18(2), 473-505. https://doi.org/10.5465/annals.2023.0087
[3] Sirmon, D. G., Hitt, M. A., Ireland, R. D., & Gilbert, B. A. (2011). Resource orchestration to create competitive advantage: Breadth, depth, and life cycle effects. Journal of Management, 37(5), 1390-1412. https://doi.org/10.1177/0149206310385695
[4] Nohria, N., & Gulati, R. (1996). Is slack good or bad for innovation? Academy of Management Journal, 39(5), 1245-1264. https://doi.org/10.5465/256998